학창 시절 이상한 교육법 아닌 교육법이 있었다. 사고를 쳐서 반성문을 써야 하거나, 시험 문제 중 틀린 문제가 있으면 공책에 빽빽하게 적어서 제출하게 했다. 일명 깜지라고 한다. 같은 문장을 수없이 쓰다 보면 그 문장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고, 멍하니 손만 움직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영원히 내 인생에서 사라질 줄 알았던 그 깜지가 좀 더 세련된 이름과 모습으로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게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의 ’100일동안 100번 쓰기’였다. 그는 원하는 것을 반복해서 적으면 목표가 선명해지고 결국 현실로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내게 부정적이였던 깜지가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의 입을 한 번 거쳐 나오니 뭔가 달라 보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좋은 효과가 있는 것일까?

다양한 연구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동은 생각보다 복잡한 행동이다. ’가’라는 글자 하나를 쓸 때도 우리는 완성되어 가는 글자의 모양을 보면서 동시에 손을 움직인다. 어느 방향으로 선을 긋고, 어디서 멈추고, 어느 정도 힘을 줄지 계속 조절한다. 반면에 키보드는 다르다. ’가’를 치든 ’나’를 치든 손가락은 단순히 정해진 키를 누르는 것뿐이다. 글자의 형태와 손의 움직임 사이의 관계가 훨씬 약하다. 이 차이는 특히 새로운 문자나 기호를 익힐 때 두드러진다. 

Longcamp 연구팀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처음 보는 문자를 가르치면서 한 집단은 손으로 쓰게 하고, 다른 집단은 키보드로 입력하게 했다. 이후 원래 문자와 좌우가 뒤집힌 문자를 구별하게 했더니, 손으로 쓴 집단이 방향을 더 정확하게 기억했고, 그 차이는 몇 주 뒤에도 나타났다. 즉 손글씨가 우리의 기억력 전체를 높여주는 마법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글자의 방향이나 획처럼 손의 움직임과 연결된 형태를 학습하는 데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서는 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다섯 살 아이들에게 글자를 직접 쓰게 하거나, 점선을 따라 그리게 하거나, 키보드로 입력하게 한 뒤 뇌를 촬영했다. 직접 글자를 만들어본 아이들은 그 글자를 바라볼 때 읽기와 관련된 신경회로를 더 강하게 동원했다. 중요한 점은 예쁜 글씨를 썼느냐가 아니라 삐뚤빼뚤하더라도 자신이 손을 조절해 형태를 직접 만들어봤다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연구는 뇌 활성의 차이를 보여준 것이지, 손글씨를 쓴 아이가 몇 년 뒤 반드시 책을 더 잘 읽는다는 사실까지 증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글보다 그림이 더 강력한 경우도 있다. Wammes와 동료들의 연구에서는 단어를 단순히 써본 사람보다 그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한 사람이 나중에 더 많은 단어를 기억했다. 그림 실력은 전혀 상관없다. ‘사과’라는 단어를 그리려면 먼저 의미를 해석하고, 어떤 모양으로 표현할지 결정하고, 손으로 실제 형태까지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의 정보를 처리하는데 세 과정이 결합된다.

그런데 손글씨의 진짜 장점은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손으로 쓰는 것은 느리다.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의 말을 토씨 하나까지 받아 적으려고 하면 금세 놓친다. 그래서 선택해야 한다.

“이 문장의 핵심은 뭐지?”

그리고 다시 줄여야 한다.

“나만의 언어로 어떻게 바꿀까?”

손글씨의 불편함이 오히려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때 ‘노트북보다 손으로 필기해야 공부가 잘된다’는 주장이 크게 주목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반전이 있다. 그 유명한 결과를 다시 검증한 연구에서는 노트북 사용자가 실제로 더 많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경향은 나타났지만, 손글씨 집단이 시험에서 명확하게 더 우수하다는 결과는 재현되지 않았다. 비슷한 연구들을 함께 살펴본 분석에서도 손글씨 자체가 즉각적인 학습 능력을 높인다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아도 완수할 수 있는 깜지

시험에서 틀린 답을 반복적으로 쓰면서 처음 몇 번은 생각한다. 그 다음부터는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단순히 형태를 익히고 자동화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왜 틀렸는지 이해해야 하는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질문의 정답은 2번이다.”

이 문장을 백 번 쓰는 것보다, 답을 가리고 다시 풀어본 뒤,

“왜 나는 4번이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설명해보는 편이 훨씬 많은 사고를 요구한다. 우리가 공부할 때 필요한 것은 종이에 글자를 많이 남기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답을 다시 꺼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깜지의 문제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목표 100번 쓰기’는 어떨까?

매일 목표를 반복해서 쓰는 행동 자체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목표를 자주 떠올리면 관련된 기회와 장애물에 더 자주 주의를 기울일 수도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목표를 쓰는 행위가 일을 시작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아주 위험한 착각 하나가 생긴다. 목표를 썼다고 해서 마치 오늘 목표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만족감을 얻으며 정작 필요한 행동들은 뒤로 미루게 될 수도 있다. 목표를 쓰는 것과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전혀 다른 행동이다.

그래서 목표를 쓴다면 이런 식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1년 안에 사업 매출을 두 배로 만들겠다.”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그걸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지?”

“그 장애물이 나타나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심리학에서는 원하는 미래를 상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현실의 장애물을 함께 생각한 뒤, ‘만약 X가 일어나면 나는 Y를 한다’라는 계획까지 연결하는 방법을 연구

해왔다. 이른바 멘탈 대조 및 구현 의도 (MCII: mental contrasting + implementation intentions) 방식이다. 21개 연구, 약 1만 5천 명을 포함한 메타분석에서는 목표 달성에 작지만 의미 있는 효과가 나타났다. 다만 출판 편향을 고려하면 실제 효과는 이보다 작을 수도 있다.

감정을 쓴다고 반드시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스트레스 받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일기를 쓴다. 힘든 감정을 적고 나면 확실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닌가 보다. 표현적 글쓰기를 다룬 39개의 무작위 대조 연구를 분석한 메타분석에서는 스트레스를 경험한 일반 성인의 우울 증상을 장기적으로 감소시키는 뚜렷한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주제와 횟수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감정을 쓰는 것 역시 ‘쓴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같은 일을 계속 되씹으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지?”
 반복해서 적는 것과,
 “나는 왜 그 순간 그렇게 화가 났을까?”
 “내가 실제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상황에서 한 발자국 나와서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적는 건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긍정의 힘’을 맹신한 채 긍정적인 말을 반복한다고 항상 마음까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랑 받는 사람이다” 같은 긍정적 자기진술을 반복하게 한 연구에서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나타났지만, 오히려 자존감이 낮은 참가자들은 기분이 더 나빠지기도 했다. 자신이 믿는 현실과 거리가 너무 크면 오히려 그 괴리감만 더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쓰기는 우울 증상에 장기 효과가 없고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높일 수 있다.

손글씨의 최종판단

내가 판단한 손글씨의 효과다.    

문자와 기호를 익히는 데 좋다.

느린 속도 덕분에 핵심 파악과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게 되어 이해가 깊어진다.

종이의 고정된 배치와 그림은 더 잘 기억하게 도와준다.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적는 깜지 같은 경우는 이런 기대효과는 대부분 사라진다.

결국 핵심은 펜이나 키보드처럼 어떤 도구를 사용했냐가 아니라, 이걸 그냥 복사했느냐, 생각을 했느냐의 차이다. 손글씨도 정보를 선택하고, 회상하고, 도식화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설계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사고를 깊게 만들지 않으며, 키보드도 그대로 받아 쓰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기의 산만함을 통제하고, 필기 후 복습을 하고, 자료의 종류와 학습 목표를 인지한다면 손글씨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손글씨가 좋은가, 키보드가 좋은가’가 아니라,

 ‘기록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