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덕분에 이제 누구나 쉽게 그림을 그리고, 음악과 영상을 제작하고, 소설을 쓰기도 한다. 예전에는 몇 년을 배워야 겨우 만들 수 있었던 결과물이 이제는 커피 한 잔이 식기도 전에 완성된다.
당연히 예술가들은 위기감을 느낀다. 허락도 없이 자신들의 작품들이 AI 학습에 사용됐다며 소송을 걸고, 인간의 창작과 AI의 모방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공포심을 느끼고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을까?
어느 영상을 보다가 귀에 쏙 들어오는 좋은 노래가 들려왔다. 어떤 가수인지 찾아보니 그게 AI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신기하게도 그 노래에 대한 흥미가 확 떨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꼭 소장하는데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이상했다. 내가 좋아했던 그 멜로디와 가사는 그대로인데 그걸 누가 만들었다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머릿속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데 가슴속에서 거부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노래나 영화, 소설을 좋아할 때 그 자체만으로 좋아한다기보다 그 안에 숨겨진 스토리를 무엇보다 좋아했다. 그걸 왜 만들게 되었으며,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고난과 역경, 일화가 숨겨져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그걸 알고 그 작품을 접하게 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남들도 AI가 만든 것들에 이미 조금씩 지쳐가고 있고 오히려 인간이 직접 만든 것에 더 끌리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잘 만든 결과물보다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 기술만으로는 승부를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결국 그 사람만 갖고 있는 고유한 경험과 지식에서 진정한 힘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남들은 무심히 지나친 장면에서 왜 혼자 멈춰 섰는지. 어떤 질문을 평생 놓지 못했는지.
AI는 인간의 슬픔을 묘사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눈을 감은 아버지의 차가운 주검 앞에서 서럽게 울었던 적도, 실연의 아픔에 가슴을 아파해 본 적도,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오다 순간 인생의 의미를 잃고 방황해 본 적도 없다.
“그럼 인간이 쓰는 게 무조건 AI가 쓴 것보다 가치가 있는 것일까?”
아무 경험 없이 남의 말을 흉내 낸 글은 인간이 썼어도 가짜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AI를 사용했더라도 한 사람의 실제 경험과 집요한 질문, 수많은 선택과 수정이 들어갔다면 그것을 단순한 가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결국 인간과 AI를 가르는 선은 단순한 도구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그 안에 진정성이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처럼 머릿속에 생각은 많았지만 기술과 경험이 부족해 그것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AI는 크나큰 기회다. 머릿속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는데 손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도 잘 그릴 줄 몰랐고, 영상을 만들고 싶어도 수많은 편집 프로그램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머릿속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기술이라는 높은 벽이 있었다. 물론 배우면 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 대해서는 열정이 없었다.
AI는 그 벽을 낮춰줬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설명하면 초안을 만들어준다. 막연한 이미지를 보여주면 형태를 잡아준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대신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실제로 연구에서도 생성형 AI는 사람들의 창작 결과를 향상시켰고, 특히 원래 창작 능력이 낮게 평가됐던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동시에 문제가 하나 나타났다. 각각의 작품은 나아졌지만, 작품들은 서로 더 비슷해졌다. 모두가 같은 뛰어난 조수를 쓰자, 모두의 목소리가 조금씩 같은 방향으로 다듬어진 것이다. AI는 평균 이하의 결과물을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평균 이상의 것들이 쏟아져 나오면, 그 평균 이상의 것들은 새로운 평균이 된다.
그래서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좋은 AI 툴을 사용하거나 좋은 명령어를 외우는 능력이 아닐 것이다. AI가 만들어준 첫 번째 결과물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 파악하고, 버릴 건 버리고, 수정할 건 수정해서 마지막에 나 자신의 경험과 관점만 남도록 하는 능력. 즉, 나만의 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석고를 깎고 깎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나보다 잘 만드는 시대에, 나는 무엇으로 나임을 증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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