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제일 먼저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판단 기준은 늘 지속 가능성이였다. 빠른 길보다, 오래 걸을 수 있는 길.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 앞에서 지금의 모습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사람을 만날 때 초반에는 거의 대부분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연기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면, 나는 바로 내 본 모습을 보여준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은 척하지 않고, 상대방의 무례함과 이기심에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 다음은 온전히 상대방의 몫이다. 그 사람이 그런 나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거나, 조용히 멀어질 것이다. 둘 다 괜찮다. 어차피 연결되지 않을 관계라면 괜히 오래 끌다가 서로 상처만 주고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빨리 끝내는 편이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다.
일을 할 때도 이 기준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다는 길이 많다. 문제는 그 방법을 내가 오래 견딜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돈은 되지만 매일 아침 출근길이 고통스러운 직장, 성과는 빠르지만 그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일. 그런 길은 잠시 걸어갈 수는 있지만 힘껏 달려가기에는 열정이 안 생긴다. 그렇게 오랫동안 달려가지 못할 일이라면 그 결과도 그저 그런 결과만 나올 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딨노? 그냥 참고 하는거지!”
사회 생활을 해 보니 맞는 말이였다. 대부분 그냥 그렇게 연기를 하며 살아오고, 끈기 있게 버티는 사람을 우러러 보는 사회이다.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는 직장을 일찌감치 그만두고 나오는 사람은 철이 아직 안 든, 사회생활을 못하는 낙오자가 된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이 대단해 보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짧은 하나 뿐인 인생을 그렇게 끝내는 게 안타까울 뿐이였다.
“어차피 끝날 인생, 내 하고 싶은 건 해 보고 끝내자.’
내 좌우명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살다가 죽어도 너무 짧다. 나는 빨리 성공 할 수 있는 일보다, 오래 실패해도 내가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한다. 그렇다고 그저 취미활동만 하다 끝내고 싶다는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되, 그 안에 나만의 생각과 기준을 심는 것. 그 과정에서 스스로 의미를 느끼고, 내 취향과 가치를 더욱 뾰족하게 다듬는 것. 언젠가는 나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필요한 가치가 되는 것. 그래서 남들이 돈을 내고서라도 사고 싶게 만드는 것. 그럼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고, 더 깊이 탐구하게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게 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찾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오래 사랑할 수 있으면서 다른 사람도 기꺼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나의 기쁨과 타인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 아마 최고의 선택은 그 교집합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가족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익숙하기 때문에 지금 하는 것들을 버릴 수 없는가? 하나만 기억하라. 우린 곧 죽는다. 우물쭈물하다가 나중에 눈 감을 때 후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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