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돌아가신 이순재 배우가 남긴 말씀이다. 본인이 대접 받기 보다는 항상 솔선수범하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 보이는 분이시기에 흔한 인생 조언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나의 부모님이 그걸 제대로 실천한 사람들이다. 남들을 위해 자신이 손해보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도움을 받았던 가족들, 친구들은 그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어머니가 가장 도움이 절실할 때 외면했다. 그 후부터 다짐했다. 난 절대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노라고.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손해보지 않으려 했고, 혹여나 조금 손해라고 생각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따졌다. 그게 난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공평을 원한 게 아니라 나만 손해 보는 억울한 상황을 견디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때 신발을 도둑맞은 적이 있다. 신발을 잃어버린 것도 속상했지만, 나만 그런 일을 당했다는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짝꿍의 신발을 몰래 훔쳐서 몰래 어딘가 숨겨놓거나 버렸던 거 같다.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하지만 나만 손해를 보는 것보다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손해를 받으면 억울했던 마음이 한결 풀어졌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불리한 불평등 회피’라고 부른다. 절대적으로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내가 덜 가졌다는 사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반응은 인간에게만 있는 고상한 정의감이라기보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몫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발달한 오래된 본능에 가깝다.
이러한 증상은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제 값 주고 샀는데 차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하나하나 따져 보상을 받아낸다. 친구끼리 밥을 먹을 때도 내가 한 번 샀으면 그 친구는 다음번에 무조건 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도직입적으로 따지거나 다음부터 잘 안 만나게 된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여행을 가면 누가 더 많이 준비했는지, 누가 더 오래 운전했는지, 누가 설거지를 한 번 더 했는지까지 마음속으로 센다. 그러다 내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면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고 누군가 나서서 할 때까지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도 마찬가지다. 내가 상대방보다 더 사랑한다고 느끼면 덜 사랑하려고 애쓴다. 서로의 사랑이 대략 비등해질 때까지.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피해가 관점의 정의 민감성’이라고 한다. 장점은 부당한 일을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되어 쉽게 이용당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하면 세상의 작은 차이까지 공격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더 심해지면 그 일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반추, 분노, 보복 충동에 빠지기 쉽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사람이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을 ‘손실 회피’라고 설명한다. 무언가를 얻는 기쁨보다 빼앗겼다는 불쾌감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작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더 큰 비용을 감내한다.
사람 사이에는 항상 주고받음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돌려주고 싶고, 내가 계속 주기만 하면 서운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 상호성은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원리다. 하지만 그걸 가격을 정산하듯 정확히 반으로 잘라서 계산하니 문제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정확히 반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밥값도, 집안일도, 사랑도 매번 같은 크기로 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날은 내가 더 주고, 어떤 날은 상대가 더 준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계산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피곤해졌다. 관계 그 자체보다 계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싸워서 찾는 내 몫보다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시간과 감정이 훨씬 더 컸던 거 같다. 조금 손해 보고 산다는 게 부당한 일을 무조건 참고 살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세상의 모든 차이를 부당함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 때론 내가 한 번 더 밥을 살 수도 있고, 여행 준비를 조금 더 할 수도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 작은 몫을 포기하고 내 시간과 마음을 지키는 선택을 해보려 한다. 모든 손해를 피하려는 사람보다, 무엇을 손해 봐도 괜찮은지 아는 사람이 더 자유롭다는 것을 알기에. 혹여나 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렇게 질문하자.
“이 작은 손해를 피하기 위해 내가 잃게 되는 더 큰 것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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