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쉽지 않다.”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럼 쉬운 사람은 뭐고 쉽지 않은 사람은 뭐지?”

“싫은데도 웃는 사람?
“화가 나도 분위기를 위해 화를 삼키는 사람?”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혼자 불편을 떠안는 사람?”

난 예의가 없는 사람을 극도로 증오한다. 그리고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는다. 늦는다는 연락도 없이. 난 그냥 가버리고 한동안 연락을 안 받는다. 내 시간에 대한 존중이 없으니까.
일하는 동안 옆에 있는 직원이 수시로 이것저것 물어본다. 몇 번은 답해주다 어느 순간부터 못 들은 척한다. 오로지 자신의 업무만 생각한 채 내 업무에 대한 존중은 없으니까.
회사 선배들이 신입사원인 나에게 매번 하는 행사라며 한 턱 쏘라고 한다. 처음에 그냥 무시하다가 매번 똑같은 소리를 하길래 한 마디를 던지자 그 후로 조용하다. “이제 입사했는데 돈이 어디 있습니까…”. 신입사원에 대한 존중이 없으니까.

이걸 심리학에서는 ‘경계 설정’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 경계의 중심에는 상대를 바꾸려는 욕망보다 나를 보호하려는 책임이 있다. 그런데 내 행동을 보면 모든 순간이 경계보다는 보복이였다.

그냥 가버리고 연락을 받지 않는 것.
상대의 말을 못 들은 척하는 것.
참다가 한꺼번에 날카롭게 쏟아내는 것.
상대가 내 시간을 존중하지 않았으니 나도 연락을 받지 않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상대가 내 업무를 존중하지 않아 그 사람의 존재를 무시했다. 나는 나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난 상대에게 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완전 정반대인 선배가 있었다. 성격이 유해서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억울하게 야단을 맞아도 절대 말대꾸를 하지 않고 수긍하는 선배
주말에 팀장이 자기 아내가 하는 슈퍼마켓 일이 많다고 불러내도 나가는 선배 (돈도 안 받고 한다…)
회식 날 중간에 절대 안 빠지고 끝까지 남아 뒤치닥거리 하는 선배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 불렀다. 친화성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잘 살피고, 협조적이며, 갈등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보통 집단 안에서 사랑을 받는다.

문제는 그 친화성이 자기희생과 결합할 때다. 거절하면 미움 받을 거 같고, 반박하면 관계가 깨질 것 같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 계속 자신을 희생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배려’라고 부른다.

흔히 ‘비위 맞추기’는 단순히 성격이 착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갈등, 거절, 비난을 피하기 위해 몸이 배운 생존 전략이다. 문제는 억눌린 감정이 그 사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무기력하거나, 피곤해 지거나, 이유 없이 사람을 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선배가 어느 날 나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더 이상 이 짓도 못 해 먹겠다고, 1년 정도 쉬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그러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아내가 암에 걸려 1년 도 안 돼서 죽고 나자 그 때부터 정신이 들었는지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선배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온 자기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을 뿐이였다.

나도 처음부터 내 기준에 대해서 엄격하게 내세우지는 않는다. 모든 불편함을 무례로 규정하고, 모든 갈등에서 관계를 끊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경계가 너무 지나치면 아무도 가까지 오지 못하기에 나도 처음에는 최대한 잘 맞춰주려고 배려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런 ‘호의’를 ‘권리’로 아는 순간 상대방에게 확실히 인지를 시켜준다. 선을 넘었다고.

내가 원하는 것은 ‘쉬운 사람’도, ‘어려운 사람’도 아니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은 인정하며,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는 만큼 내 경계도 존중 받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까다롭고 별나다고 낙인을 찍을지도 모른다. 난 그래도 괜찮다.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사람이 될지언정, 나 자신에게 나쁜 사람이 되긴 싫다. 나를 버려야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과연 누구를 위한 사랑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