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여러 나라의 여성들이 연애와 결혼에 관해 토론했다. 주제는 사랑하지만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남자였다. 한국 여성 출연자는 말했다.
“연애는 할 수 있지만 결혼은 별개죠.”
사랑만으로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서양 여성 출연자들이 되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수입이 적다면 당신이 더 벌면 되지 않나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결혼을 바라보는 전제 자체가 달랐다. 한쪽은 남편을 가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으로 보았고, 다른 쪽은 서로 사랑한다면 두 사람 중 형편이 나은 사람이 더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단순하게 결론 내렸다. 서양에서 여성의 권리가 더 높은 것은 여성들이 권리와 함께 책임도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그 생각은 특전사와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더욱 강해졌다. 내가 만난 일부 여성 군인들은 남성과 똑같은 군인이 될 기회를 원했지만 불침번이나 힘든 훈련에서는 ‘여자라서’ 빠졌다. 반면 특수훈련 참가나 진급처럼 경력에 도움이 되는 기회에는 ‘여자라서’ 누구보다 먼저 기회를 쟁취했다. 소방관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장비를 감당하기 어려우니 위험한 현장보다 사무실 근무를 선호하면서도 소방관으로서의 직함과 처우는 똑같이 원했다. 그들에게 남녀평등은 마치 뷔페 같아 보였다. 권리는 접시에 가득 담고, 의무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내려놓는 것처럼
그러다 호주에서 소방관들이 출동한 모습을 보았다. 모두 공기호흡기를 쓰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임무가 끝난 뒤 한 명 씩 장비를 벗었는데, 그중 한 명이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성 소방관들과 같은 장비를 메고, 같은 현장에 들어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였지만, 한국 여성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이상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Fire and Rescue NSW의 소방관 체력시험은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지원자에게 같은 최소 기준을 적용한다. 여성에게 문은 똑같이 열려 있지만, 문턱까지 낮춰주지는 않는다.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소방관의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다 (체력시험에 무릎을 꿇고 팔굽혀펴기를 하는 한국 여성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본적인 권리는 의무를 잘 수행한 사람에게 주는 성과급이 아니다. 여성의 인권이 무거운 장비를 들 수 있어야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법 앞의 평등은 능력을 증명한 뒤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특정 직업에 들어갈 권리와 그 직업의 핵심적인 업무를 수행할 책임은 분리하기 어렵다. 화재는 여성이라고 불길을 낮춰주지 않는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의 몸무게도 구조자의 성별에 맞춰 가벼워지지 않는다. 소방관에게 필요한 기준이라면 성별이 아니라 실제 직무를 중심으로 정해야 한다.
결혼 문제는 소방 현장보다 복잡하다. 경제력이 부족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여성에게 단순히 “당신이 더 벌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쉬워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결혼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 경력 단절의 위험을 더 많이 감당한다. 한국 부부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아내가 남편보다 무급 가사·돌봄노동을 약 3.2배 더 많이 했고, 자녀가 있을수록 그 차이는 더 커졌다. 결혼 후 자신이 자녀를 대부분 맡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여성이 남편의 경제력을 중요하게 보는 것은 단순한 탐욕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미래에 자신이 잃을 소득과 경력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남성에게는 생계부양을, 여성에게는 출산과 돌봄을 요구했다. 여성은 경제적 보호를 받는 대신 가정 안의 의무를 떠맡았고, 남성은 경제적 책임과 병역의무를 지는 대신 더 많은 권위와 자유를 누렸다. 문제는 이 오래된 거래가 본인의 입맛에 맞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여성은 남편의 전통적인 부양 의무는 그대로 두면서 가사와 육아는 완전히 평등하게 나누기를 원한다. 어떤 남성은 아내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집안일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 자신에게 불리한 건 버리고, 유리한 것만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평등은 모든 사람을 무조건 똑같이 대하는 것도 아니다. 임신부, 장애인, 영유아 동반자처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특권이 아니다. 반대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쉬운 기준과 편한 자리를 제공한다면,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라는 고정관념을 국가가 다시 확인해주는 꼴이 된다. 필요에 따른 배려와 성별에 따른 특혜는 구분해야 한다. 소방관이라면 성별과 관계없이 사람을 구조할 수 있어야 하고, 군인이라면 작전에 필요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수입이 적다면 당신이 더 벌면 되지 않나요?”
그 단순한 질문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사랑만으로 현실을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부족함을 함께 감당할 생각조차 없다면, 사랑 역시 현실 속에 설 자리가 없다. 어쩌면 사랑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골라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누구 한 사람의 의무로 떠넘기지 않고 함께 짊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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