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책, 책, 책이었어. 내가 평생 읽고 싶은 모든 책을 다 읽었지. 두 번씩. 디킨스는 세 번.”

영화 ‘어바웃 타임’의 이 대사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영화 속에서 팀의 아버지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능력으로 그가 누린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도, 권력을 얻는 것도, 인생을 극적으로 다시 쓰는 것도 아니었다.

책이었다.

그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바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더 많은 시간.

오늘 내 책 목록을 들여다 봤다.

진짜 읽고 싶은 책만 남긴다고 남겼는데도 175권…

책장에 꽂혀 있는 175권의 책은 아름다워 보인다.

가능성처럼 보인다.

언젠가 내가 되고 싶은 미래의 나처럼 보인다.

더 지혜롭고,

더 성숙하고,

더 영향력 있는 사람

그런데 동시에 그 책들은 아주 불편한 사실도 보여준다.

나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다.

모든 책을 다 읽기엔 천천히, 깊게, 완벽하게 읽을 수는 없다.

정보는 어디에나 있다.

요약은 즉시 나온다.

설명은 끝이 없다.

내 뇌가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기 시작할 때,

AI는 이미 결과를 내 앞에 던져놓는다.

문제는 더 이상 접근성이 아니다.

문제는 판단이다.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무엇이 나에게 가치가 있는가?

나는 정말 중요한 것을 공부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사고 있는건 아닌지?

책을 이메일 처리하듯 “처리”하고 싶지 않다.

독서에는 여전히 느림이 있어야 한다.

침묵이 있어야 한다.

내가 도망가고 싶어 하는 문장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무는 불편함이 있어야 한다.